밤의 아소역, 장노출 아홉 컷

매표소와 역사

해가 진 뒤 아소역에 닿았다. 역 앞은 조용했고 가로등 몇 개만 켜져 있었다. 오가는 사람도 차도 드물었다. 카메라를 들고 역사 안팎을 천천히 돌았다. 아홉 컷 모두 밤에 찍었다. 매표 창구 옆에는 영업시간을 적은 작은 안내가 붙어 있었다. 창구 위 조명만 켜져 있었다. TICKETS 글자는 나무판에 하나씩 붙어 있었다. 창구 오른쪽 벽에는 시간표로 보이는 판이 걸렸다. 유리창 안쪽으로 둥근 거울이 비쳤다.

TICKETS 간판 아래 불 꺼진 아소역 매표 창구

아소역 매표소. TICKETS 간판 아래 창구는 닫혀 있었다.

역사 밖으로 나와 정면을 담았다. 목조 건물 지붕 아래 阿蘇駅 현판이 걸려 있었다. 입구 옆에 빨간 우체통이 서 있었다. 앞쪽 울타리에는 ロータリー内 駐停車禁止라고 적힌 초록 간판이 달렸다. 지붕 위쪽은 하늘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역사 오른쪽 끝에도 작은 건물이 이어졌다.

창 세 개에 불이 켜진 밤의 아소역 역사 정면과 빨간 우체통

노출을 조금 줄여 한 장 더 찍었다. 창에서 나온 빛이 역 앞 바닥까지 닿지 못했다. 입구 오른쪽에 세로로 긴 역명 간판이 서 있었다. 첫 장보다 전체가 한 단계 어둡게 찍혔다. 창틀 격자가 더 또렷하게 남았다. 우체통의 붉은색도 거의 검게 가라앉았다.

창 세 개에 불이 켜진 밤의 아소역 역사 정면과 빨간 우체통

역사 정면. 불이 켜진 창이 셋뿐이었다.

대합실 쪽은 더 어두웠다. 긴 창으로 불빛만 새어 나왔다. 창 너머로 안내판과 문이 희미하게 보였다. 오른쪽 문간 쪽에 흐릿한 형체가 찍혔다. 화면 대부분이 검게 남았다. 창 아래 바닥에 불빛이 가느다란 띠로 떨어졌다. 밖에서 보니 대합실 안이 작은 상자처럼 보였다.

어둠 속에 불 켜진 창만 보이는 대합실

대합실 안쪽. 사람은 없었다.

승강장

승강장으로 들어섰다. 나무 기둥과 철제 버팀대가 지붕을 받쳤다. 기둥 옆에 1번 승강장 번호판이 걸려 있었고, 선로 쪽에는 2라고 적힌 마름모 표지가 달렸다. 벤치 세 개가 벽을 따라 놓였다. 승강장 끝 가로등이 별 모양으로 번졌다. 선로 건너편에도 낮은 승강장이 이어졌다. 기둥마다 굵은 철제 고리가 달려 있었다. 바닥은 조명을 받아 연한 녹색으로 찍혔다.

1번 승강장 지붕 기둥과 벤치, 멀리 빨간 신호등

조금 더 끝으로 걸어가자 불빛이 줄었다. 노란 점자 블록만 선로를 따라 길게 이어졌다. 승강장 지붕 기둥이 어둠 속으로 줄지어 사라졌다. 멀리 빨간 신호등 하나가 선로 끝을 지켰다. 지붕 아래 매달린 표지판이 조명 불빛에 반쯤 드러났다. 셔터를 길게 열어도 선로는 검게만 찍혔다.

가로등 불빛 아래 어두운 승강장과 선로

1번 플랫폼. 멀리 빨간 신호등 하나.

역명판에는 阿蘇라는 두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 왼쪽 화살표 옆에는 いこいのむら, 오른쪽에는 うちのまき가 적혀 옆 역을 알려 주었다. 아래에 로마자와 히라가나 읽기가 함께 적혔다. 역명판 옆 유리문 안쪽으로 화살표 안내판이 보였다. 왼쪽 벽은 세로 나무살로 마감돼 있었다. 역명판 아래 벽면은 거친 돌 질감이었다.

いこいのむら와 うちのまき 방향이 적힌 阿蘇 역명판

阿蘇 역명판. 양옆이 いこいのむら와 うちのまき.

역 앞 도로

역 앞 도로로 나가 셔터를 길게 열었다. 차가 지나간 자리에 흰빛과 붉은빛이 선으로 남았다. 신호등 불빛이 화면 위쪽에 작게 걸렸다. 도로 오른쪽으로 인도 턱이 곧게 뻗었다. 전선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차는 보이지 않고 빛의 선만 도로를 채웠다. 길가 건물은 윤곽만 겨우 남았다.

역 앞 도로를 흐르는 자동차 불빛 장노출

한 장은 카메라가 흔들려 불빛이 물결처럼 휘었다. 차 불빛이 두 갈래로 갈라져 화면을 가로질렀다. 어디서 찍었는지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흔들렸다.

삼각대 없이 찍어 흔들린 자동차 불빛 궤적

역 앞 도로 장노출. 차 불빛이 삐뚤게 흘렀다. 삼각대 없이 찍은 티가 난다.

그때와 지금

밤의 시골역은 장노출 연습장으로 딱이었다. 다음엔 삼각대를 챙긴다.

사진 전체에 초록빛이 돌았다. 역사 창의 흰 불빛, 가로등의 주황빛, 신호등의 붉은빛이 그 위에 점처럼 박혔다. 어두운 부분이 대부분이라 작은 불빛 하나하나가 또렷했다. 그 초록빛이 밤의 시골역 분위기를 오히려 잘 남겼다.

역사 조명과 가로등, 신호등처럼 밝기가 다른 빛이 한곳에 모여 있어 노출을 여러 번 바꿔 볼 수 있었다. 손으로 들고 찍은 컷은 대부분 조금씩 흔들렸다. 그래도 건물처럼 움직이지 않는 대상은 형태가 알아볼 만큼 남았다. 다시 간다면 막차 시간 전후로 찾아가 열차가 들어오는 장면도 장노출로 담아 보겠다. 삼각대를 세우면 흔들린 선 대신 곧은 빛의 궤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관련 글

  • 유후인으로 가는 길 (신혼여행 2)

    안개 낀 길과 정류장, 도시 전경, 고속열차와 ‘YUFUIN NO MORI’ 열차가 이어지는 2019년 3월 30일 글이다. 사진 15장을 순서대로 적었다.

  • 망해버린 삿포로 여행

    삿포로 첫날 저녁의 징기스칸과 다음날 니조시장 덮밥, 오타루에서 돌아온 뒤의 스프카레를 사진 열 장과 글쓴이 문장으로 적었다.

  • 나 홀로 간사이 여행기

    나라의 사슴과 주의 안내판, 교토역, 난바 상점가 간판, 글리코 간판까지 사진 24장에서 보이는 것과 글자를 순서대로 정리했다.

  • 20대때 여행사진

    20대때 여행사진 17장을 순서대로 정리했다. 비행기, 눈 덮인 숲, 벽돌 사원, 매표소 사진과 사진 속 글자를 적었다.

  • 교토타워와 안개 낀 오사카 전망

    교토타워 한 컷과 안개 낀 오사카 시가지, 난간 너머 도심, 강과 철교를 담은 사진 다섯 장. 1번은 필름 끝이라 아래쪽이 탔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