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장대 처마의 화성장대 현판

수원 화성 행궁동, 단풍 든 성곽길을 걸었다

2013년 11월 10일, 수원 화성 행궁동을 걸었다. 단풍이 절정이라 카메라 하나만 챙겨 나섰다. 골목의 벽화에서 시작해 성곽을 타고 화성장대까지 오른 뒤, 신풍루 앞을 지나 다시 벽화마을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골목의 벽화

수원 행궁동 벽화, 아령 든 인물 그림과 낡은 벽돌담

행궁동 골목 초입, 셔터 문 하나에 큼직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아령을 든 인물과 알아보기 힘든 글자가 나란했다. 낡은 벽돌담과 대비되어 눈에 띄었다. 사람은 없고 그림자만 길게 늘어서 있었다.

수원 행궁동 벽화마을, 구름 그림 벽 앞에 세워진 자전거

몇 걸음 더 들어가자 파란 벽 하나가 나타났다. 구름과 비행운이 크게 그려져 있었다. 벽 앞에는 자전거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하늘색과 벽화 색이 거의 구분되지 않았다.

수원 행궁동 골목의 카페 건물 외관

골목을 빠져나오니 카페 건물이 서 있었다. 통유리창 너머로 테이블 몇 개가 비쳤다. 화단에는 낮은 나무가 줄지어 심겨 있었다. 아침 볕이 건물 정면을 그대로 받고 있었다.

성곽길을 오르다

수원 화성 성곽길 오르막에 꽂힌 깃발과 흙길

성곽 오르막에 깃발이 줄지어 꽂혀 있었다. 흙길 옆으로 낡은 계단이 이어졌다. 깃발 사이로 하늘이 유난히 파랬다. 걸음마다 흙먼지가 조금씩 일었다.

수원 화성 성곽길의 단풍나무와 성벽 아래 시내 전경

길 한쪽에 단풍나무 한 그루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마른 잔디밭이 나무를 둘러싸고 있었다. 성곽 아래로는 시내 건물이 내려다보였다. 나무 그림자가 길게 비탈을 덮었다.

화성장대

수원 화성장대 처마의 화성장대 현판

정상에 오르니 정자 처마에 현판이 걸려 있었다. ‘화성장대’ 네 글자가 또렷했다. 단청 색이 햇빛 아래 진하게 살아났다. 처마 끝으로 새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화성장대에서 내려다본 수원 시내 파노라마

장대 위에서 수원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단지가 지평선까지 이어졌다. 먼 산은 옅은 갈색으로 흐려져 있었다. 바람이 세서 오래 서 있기는 힘들었다.

화성장대 앞 세계 도시 거리 이정표

근처에는 세계 도시까지 거리를 적은 이정표가 서 있었다. 런던, 파리, 도쿄 같은 지명이 화살표마다 붙어 있었다. 소나무 가지가 이정표 위로 늘어져 있었다. 지나던 사람 몇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단풍 든 하산길

수원 화성 성곽의 붉은 기둥 정자

내려오는 길에 붉은 기둥 정자가 나타났다. 단청이 벗겨진 자리 없이 깨끗했다. 주변 나무는 아직 초록과 붉은색이 섞여 있었다. 계단 몇 칸 아래로 성벽이 이어졌다.

단풍나무 가지가 드리운 수원 화성 성곽길

성곽길 위로 나뭇가지가 터널처럼 드리워 있었다. 붉고 노란 잎이 뒤섞여 하늘을 가렸다. 그림자와 볕이 길바닥에 얼룩덜룩 남았다. 발밑에는 낙엽이 두껍게 쌓여 있었다.

단풍 든 수원 화성 숲길

숲길로 들어서자 단풍이 한층 짙어졌다. 오솔길 양옆으로 나무가 빽빽했다. 길바닥은 낙엽으로 붉게 덮여 있었다. 사람 발길이 뜸해 조용했다.

가까이서 올려다본 단풍나무

나무 한 그루를 가까이서 올려다봤다. 잎마다 색이 조금씩 달라 그러데이션을 이뤘다. 가지 사이로 하늘이 조각조각 보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 몇 장이 떨어졌다.

행궁 앞마당

화성행궁 담장과 단풍나무, 도로에 떨어진 은행잎

산을 내려오니 행궁 담장이 보였다. 담장 안쪽으로 붉은 단풍나무 두 그루가 서 있었다. 도로에는 은행잎이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자전거를 끌고 가는 사람이 담장 옆을 지났다.

화성행궁 신풍루 앞 수문장 교대 공연

신풍루 앞에서 공연이 한창이었다. 갑옷 차림 배우들이 태극 문양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누각 현판에 ‘新豊樓’ 글자가 크게 걸려 있었다. 구경꾼이 문루 아래로 모여들었다.

다시 벽화마을

수원 행궁동 벽화마을의 해바라기 벽화

돌아오는 길, 벽에 그려진 해바라기 한 송이가 눈에 들어왔다. 꽃잎 색이 노랑과 주황으로 진하게 칠해져 있었다. 옆 벽에는 작은 이정표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그림 하나로 골목 분위기가 환해졌다.

행궁동과 성곽길을 잇는 코스는 걷기에 부담이 없었다. 단풍철에 한 번 더 올 만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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