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비로봉, 초가을 산행
9월 중순, 치악산으로 향했다. 짐을 혼자 꾸려 구룡사 매표소에서 출발해 비로봉까지 오르는 계곡길을 골랐다. 늦여름 초록이 아직 짙게 남아 있었다.
구룡사를 지나며

구룡사 경내로 들어서자 마당 한켠에 회색 석불이 서 있다. 기와지붕을 등지고 가만히 마당을 내려다본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은 표면이 거칠다.

사천왕문 처마 아래 걸린 현판에 四天王門 넉 자가 크게 적혀 있다. 문 안쪽 벽에는 무기를 쥔 사천왕 그림이 채색돼 있다. 절을 지나는 사람은 모두 이 문 아래를 통과한다.
계곡을 오르며

구룡소 물줄기가 바위 사이로 떨어져 짙은 초록 소를 이룬다. 폭포 두 갈래가 만나 하나의 웅덩이로 모인다. 물빛이 숲 그늘을 그대로 삼켰다.

나무 데크로 놓인 출렁다리를 건넌다. 발을 디딜 때마다 다리가 가늘게 흔들린다. 다리 아래로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낮게 깔린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이어지는 길은 온통 바위투성이다. 물길이 바위 틈을 타고 흰 거품을 만들며 흐른다. 발밑을 살피며 걸음을 옮긴다.

나무 이정표에 비로봉 2.8km, 계곡길이라 적혀 있다. 옆에는 어려움 표식이 붙어 있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이정표를 지나자 다시 폭포 하나가 나온다. 물살이 이끼 낀 바위를 타고 층층이 떨어진다. 물소리가 오르막의 숨소리를 덮는다.

탐방지원센터 부근에 세워진 탐방로 안내도를 한참 들여다본다. 구룡사에서 비로봉까지 이어지는 붉은 선이 가파른 구간을 표시한다.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지도 위 화살표로 찍혀 있다.
능선을 따라 비로봉으로

능선에 올라서자 발아래로 산줄기가 겹겹이 펼쳐진다. 구름이 낮게 걸려 봉우리 몇 개를 가렸다. 뿌연 공기 사이로 능선의 굴곡만 뚜렷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산그리메가 조금씩 방향을 바꾼다. 나무 하나 없는 능선길이라 볕을 그대로 받는다. 정상이 가까워졌다는 걸 다리가 먼저 안다.

뒤돌아보면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담긴다. 안개가 골짜기마다 얕게 고여 있다. 비로봉 정상까지 몇 걸음 남지 않았다.
비로봉 정상, 돌탑 앞에서

정상에는 돌을 쌓아 올린 커다란 탑이 서 있다. 크고 작은 돌이 층층이 얹혀 뾰족하게 솟았다. 구름이 탑 꼭대기를 스치듯 지나간다.

돌탑 주위로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저마다 사진을 찍거나 물을 마시며 숨을 고른다. 좁은 정상이 오늘따라 북적인다.

돌탑을 등지고 서서 사진 한 장을 남긴다.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여기까지 올라온 걸 이렇게 기록해 둔다.

비로봉 표지석 옆에 선다. 검은 표지석에 치악산 비로봉 1288M이 새겨져 있다. 오늘 다리로 걸어 올라온 높이가 숫자 하나로 남았다.
산 위에서 끓인 라면

바위 위에 챙겨온 먹거리를 펼쳐 놓는다. 라면, 바나나, 캔 음료, 보온병이 나란히 놓였다. 정상에서의 한 끼는 이렇게 준비한다.

휴대용 버너에 코펠을 얹고 불을 붙인다. 바람이 세서 손으로 가리며 불꽃을 지킨다. 물이 끓기까지 잠깐을 그렇게 버틴다.

코펠 안에서 라면이 끓어오른다. 좁은 냄비 속에서 면발이 몸을 뒤집는다. 김이 옅은 바람에 흩어진다.

컵에 옮겨 담은 라면을 젓가락으로 건져 올린다. 정상에서 먹는 라면은 유난히 뜨겁고 짜다. 배낭을 베고 앉아 그릇을 비운다.
능선을 뒤로하고

안내판에 적힌 치악산 유래를 읽는다. 꿩이 종을 울려 나그네를 구했다는 전설이 적혀 있다. 그 은혜에 보답해 산 이름을 치악산(雉岳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하산 전 마지막으로 능선을 눈에 담는다. 구름이 산 아래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왔던 길을 되짚어 다시 계곡길로 내려선다.
비로봉 돌탑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왔던 계곡길로 다시 내려왔다. 단풍이 짙어질 무렵 한 번 더 오르고 싶은 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