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계획 없이 오른 한라산
1월, 텔레비전에 제주 횟집 이야기가 나왔다. 계획 없이 혼자 짐을 쌌다. 여행 셋째 날, 한라산으로 향했다.
눈 속으로

장갑 낀 손이 눈밭을 가리켰다. 카메라를 든 손끝까지 눈이 쌓여 있었다. 능선을 오르는 길은 이미 발목까지 잠겨 있었다. 눈은 그칠 기미가 없었다.
통제된 정상

나무마다 눈꽃이 매달려 터널을 이뤘다. 안내판에는 기상 악화로 정상 등산을 통제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노란 우비를 입은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갔다. 카메라 앞에 서서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나뭇가지 사이로 현수막 하나가 걸려 있었다. 붉은 글씨로 썰매금지라 적혀 있었고, 그 아래 한라산국립공원과 세계자연유산이라는 문구가 함께였다. 눈에 파묻힌 나무들 사이로 흰 배경만 이어졌다.
마지막 컷

밧줄 난간을 붙잡고 선 채로 카메라를 들었다. 뒤로는 눈 덮인 능선과 안개가 뒤섞여 있었다. 옆에는 처음 보는 등산객 한 명이 나란히 서 있었다. 정상 등산은 통제돼 있었다.

밧줄을 따라 사람들이 한 줄로 걸어갔다. 눈보라에 능선의 나무들이 하얗게 지워져 있었다. 이 컷을 끝으로 카메라가 꺼졌다. 낮은 기온에 배터리가 먼저 버틸 힘을 잃었다.
다시 바다

몇 시간 뒤, 사진은 해안에서 다시 시작됐다. 검은 현무암 위로 파도가 부서졌고 능선 대신 도시가 수평선에 걸렸다. 내려오는 길, 눈길에 사고가 있었다. 그 도로 위에 나는 없었다.
한라산은 표지판 앞에서 끝났다. 정상은 다음으로 미뤄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