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유등에서 전주 한옥마을까지
가을이었다. 진주 남강에서 시작해 산청과 남원을 지나 전주까지, 도시 넷을 하루 안에 눌러 담은 여정이었다. 짐은 가벼웠고 일정은 빡빡했다.
진주, 강물 위로 뜬 등불

밤이 되자 남강을 따라 조명이 줄줄이 켜졌다. 노란 불빛이 강물에 두 겹으로 번져 흔들렸다. 다리 건너 시가지의 파란 간판 불빛까지 물 위로 길게 이어졌다.

다음 날 아침, 진주성 촉석문 앞에 섰다. 처마 아래 단청과 검은 기와가 선명했다. 문 양옆으로 붉은 갑옷을 입은 조형물 두 개가 서 있고, 관람객 몇이 그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강 위로는 유등축제 조형물이 줄지어 떠 있었다. 논개와 왜장을 형상화한 등, 부채 모양 등, 절과 탑 모양 등이 물 위에 흩어져 있었다. 다리 건너편으로는 도시의 아파트와 빌딩이 늘어서 있었다.

강가 난간 앞에는 큰 자연석에 논개의 글을 새긴 순의비가 놓여 있었다. 돌은 낡고 거뭇했다. 뒤로 남강대교와 시가지가 흐릿하게 걸렸다.

의기사 안에는 논개의 영정이 걸려 있었다. 유리에 반사된 빛 때문에 초상 아래쪽이 뿌옇게 겹쳐 보였다. 향로와 촛대가 제단 앞에 놓여 있었다.

창렬사로 가는 길에는 창을 든 의병 조형물이 양옆으로 줄지어 서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로 붉은 문루가 멀리 보였다. 조형물 하나하나의 얼굴 표정이 조금씩 달랐다.

순의단 주변에는 오래된 비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표면은 이끼와 얼룩으로 덮여 글자를 알아보기 힘든 것도 있었다. 나무 아래로 새끼줄 난간이 비석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북장대 앞에는 칼과 창을 든 장수 조형물이 좌우로 서 있었다. 처마 아래 현판이 걸려 있고, 기둥에는 한자 주련이 세로로 붙어 있었다.
산청, 꽃으로 만든 아치

산청으로 넘어가니 세계전통의약엑스포가 한창이었다. 붉은 꽃으로 뒤덮인 커다란 아치가 입구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아치 아래로 사람들이 줄지어 지나갔고, 뒤로는 산자락이 구름에 덮여 있었다.

한방 게이트 앞에도 인파가 이어졌다. 기와지붕을 얹은 정문 너머로 흰 천막들이 늘어서 있었다. 안개 낀 산이 배경으로 겹쳐 보였다.
남원, 오작교를 건너

광한루원에 들어서니 연못을 가로지르는 홍예 돌다리가 나타났다. 다리 너머로 붉은 누각이 물에 비쳐 있었다. 다리 위로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연못가에는 작은 정자와 늘어진 버드나무가 있었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무 사이로 겹쳐 보였다. 물빛은 탁한 초록이었다.

완월정 앞마당에는 큰 바위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처마가 겹겹이 이어진 누각 뒤로 버드나무가 무성했다. 사람 몇이 누각 난간에 기대 있었다.

너른 잔디밭 한쪽에는 사슴 조형물과 춘향, 이몽룡을 형상화한 인형이 국화 화단 사이에 놓여 있었다. 뒤로는 완월정이 다시 보였다. 화단은 노랗고 붉은 국화로 촘촘했다.
전주, 줄 서는 오후

한옥마을 골목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둘러앉은 어르신들이 장기를 두고 있었다. 몇은 앉아서 훈수를 두고, 몇은 서서 구경했다. 기와 담장 너머로 아파트가 보였다.

풍년제과 본점 앞에는 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한옥 처마 아래 오렌지색 간판이 걸려 있고,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보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순서를 기다렸다.
진주에서 전주까지, 하루 안에 강과 성과 다리를 다 지나쳤다. 다시 간다면 하루를 둘로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