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치악산 구룡사, 안개 낀 계곡을 걷다
원주에 사는 친구를 핑계 삼아 별다른 계획 없이 다녀왔다. 간 김에 치악산에 올라 볼 마음이 들었다. 여름 초입,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이른 아침이었다.
안개 속 능선

산길로 들어서자 능선이 안개에 잠겨 있었다. 나무 그림자가 겹겹이 짙었고 하늘은 아직 흐렸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안개의 두께가 조금씩 달랐다.

전각 처마 너머로도 산은 여전히 뿌옜다. 기와지붕 끝선과 안개 낀 봉우리가 나란히 걸렸다. 여름 산의 아침은 늘 이렇게 시작됐다.
구룡사 일주문

일주문이 나타났다. 단청이 안개 속에서도 또렷했고 현판 글씨가 낮게 걸려 있었다. 문을 지나며 산행이 아니라 절 마당으로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입구 안내판에 구룡사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절터 배치도와 함께 산 전체를 조감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지도를 한 번 훑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절 마당에는 석등 한 쌍이 나란히 서 있었다. 뒤로 전각 지붕이 안개에 반쯤 가려 있었다. 잔디는 이슬을 머금어 짙은 초록이었다.
계곡을 따라

절을 지나자 계곡이 시작됐다. 물은 청록빛으로 맑았고 바위 사이로 흘러내렸다. 나무 그늘이 물 위에 그대로 비쳤다.

숲 사이로 물줄기가 이어졌다. 안개가 나뭇가지 사이를 채우고 있었다. 발밑 돌은 젖어 있어 걸음이 조심스러웠다.

바위가 겹겹이 쌓인 구간에서 물살이 세졌다. 이끼 낀 돌 틈으로 물이 부서지며 흘렀다. 계곡 폭이 넓어지는 만큼 소리도 커졌다.

작은 폭포가 걸렸다. 물이 바위 턱을 타고 떨어지며 흰 거품을 남겼다. 자갈밭까지 물보라가 튀었다.
바위에 앉아

넓적한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모자를 옆에 벗어 두고 폭포 소리를 들었다. 다리를 쉬는 동안 물줄기만 계속 흘렀다.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을 더 남겼다. 초록 티셔츠가 이끼 낀 바위색과 겹쳐 보였다. 정상까지는 오르지 않기로 했다.
하산, 절 마당을 지나며

내려오는 길, 담장이 안개 속에 길게 이어졌다. 기와 끝선이 뿌옇게 흐려 보였다. 올라갈 때와는 다른 방향에서 절을 다시 지났다.

주차장 앞 광장에는 분수가 돌고 있었다. 물줄기 뒤로 파란 하늘이 걷혀 있었다. 안개는 산 위쪽에만 남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휴대폰을 확인하며 잠시 멈춰 섰다. 바닥 벽돌은 볕을 받아 말라 있었다. 짧은 산행은 그렇게 끝났다.
계획 없이 나선 걸음이었지만 안개 낀 계곡 하나는 제대로 봤다. 정상까지는 못 갔어도 구룡사 계곡만으로 충분한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