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해버린 삿포로 여행(2)
비 오는 날의 식당
삿포로 여행 중 하루, 비가 그치지 않았다. 밖을 다니는 대신 식당에서 오래 앉아 있었다. 검은 쟁반 위에 작은 그릇 다섯 개가 나란히 놓였다. 금속 컵에는 후추를 뿌린 크림색 수프가, 유리 그릇에는 조림이 담겨 있었다. 가운데 작은 그릇에는 얇게 썬 흰살 생선과 초록 잎이 올라갔다. 그릇 모양이 모두 달랐다. 금속, 유리, 도자기가 한 쟁반에 섞였다. 길쭉한 접시에는 노란 달걀말이 한 조각, 네모난 유리 그릇에는 연한 갈색 무스가 들어 있었다. 쟁반 앞쪽에 작은 숟가락이 하나 놓여 있었다.

다음 접시는 구운 오징어였다. 몸통에 칼집을 촘촘히 넣어 둥근 조각으로 잘랐다. 다리 쪽은 짙은 소스를 발라 구워 냈다. 소스가 탄 자리는 윤이 나는 갈색이었다. 칼집 사이로 흰 속살이 드러났다. 넓은 회색 접시에 오징어 한 마리가 통째로 누웠다. 몸통 속은 비어 있었고 고리 모양으로 썰려 있었다. 다리는 끝이 말려 올라간 채 구워졌다.

수프 카레도 한 그릇 시켰다. 가지와 당근, 튀긴 우엉이 국물 위로 올라와 있었다. 흰쌀밥 가운데에 붉은 가루가 조금 뿌려져 있었다. 옆 작은 그릇에는 가늘게 채 썬 붉은 재료가 담겼다. 국물 속에 새우 꼬리와 파가 보였다. 무쇠 냄비째 나와 한동안 식지 않았다. 국물은 주황빛이 도는 노란색이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쟁반 위쪽에 나란히 놓였다.

솥밥 뚜껑을 열자 노란 깍둑 재료와 팥이 밥 위에 올라 있었다. 가늘게 썬 다시마와 파래 가루가 흩어져 있었다. 솥 안쪽 벽에 김이 서렸다. 솥은 검은 받침 위에 올려 나왔다. 윤기 도는 밥알 사이로 팥이 드문드문 박혔다.

소고기는 겉만 굽고 속은 붉게 남겨 썰어 냈다. 옆에 샐러드 잎이 수북했다. 붉은 단면이 접시 위에서 선명했다. 작은 그릇에 간 무를 띄운 소스가 따로 나왔다. 접시 한쪽에 와사비와 소금이 조금씩 놓였다. 고기 결 사이로 기름이 반짝였다. 한쪽 끝 조각은 겉이 짙게 그을렸다. 샐러드에는 초록 잎과 보라색 잎이 섞여 있었다.

마지막은 달걀찜이었다. 위에 성게와 연어알을 올리고 초록 잎을 한 장 얹었다. 달걀찜 표면은 매끈하고 연한 노란색이었다. 검은 그릇이 접시 위에 한 번 더 받쳐져 나왔다. 숟가락을 넣자 부드럽게 갈라졌다. 게살로 보이는 흰 살점도 몇 조각 들어 있었다. 뒤쪽 접시에는 노란 달걀 요리가 조금 보였다.

식당을 나서며
식당 벽에는 원형 나무판과 금속 잎사귀 장식이 걸려 있었다. 나무판 위에 동그라미와 세모, 네모가 흰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금속 잎은 줄기를 따라 벽을 타고 퍼졌다. 조명을 받아 잎마다 그림자가 한 겹씩 생겼다. 나오는 길에 이 벽을 한 장 남겼다.

복도는 좁고 길었다. 양옆에 격자문이 늘어서 있었다. 문마다 안쪽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가려져 있었다. 바닥은 매끈한 회색이었다. 천장 조명이 바닥에 점점이 떨어졌다. 벽에도 입구와 같은 금속 잎사귀 장식이 이어졌다. 복도 끝 창으로 바깥의 흐린 빛이 들어왔다.

숙소에서
숙소로 돌아와 컵에 든 치즈케이크를 먹었다. 윗면에 흰 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컵 아래로 노란 크림이 비쳤다. 방 한쪽 벽에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이날 마지막 사진이었다. 케이크 윗면은 살짝 갈라져 있었다. 작은 컵 하나 크기였다. 컵 옆면에 작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비가 계속 내렸다. 이게 이날 찍은 전부다.
그때와 지금
날씨 때문에 아쉬움이 남은 여행이었다. 연말에는 구마모토로 떠나기로 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거리 대신 식탁이 기록으로 남았다. 접시마다 한 장씩 찍으니 하루 치 사진이 됐다. 풍경 사진은 한 장도 없고 음식과 실내 사진만 아홉 장이다. 여행 사진으로는 초라하지만, 이날 무엇을 먹었는지는 또렷하게 남았다. 사진마다 접시와 그릇의 색이 어둡고 차분해서 음식 색이 더 도드라졌다. 음식은 대부분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었다. 복도와 벽 장식만 서서 정면으로 찍었다.
전채부터 오징어, 수프 카레, 솥밥, 소고기, 달걀찜까지 한 자리에서 이어졌다. 밖에 나가지 못한 대신 식사가 길어졌다. 다음에 삿포로에 간다면 날씨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일정을 잡겠다. 비가 와도 다닐 수 있는 실내 동선을 미리 알아 두고, 우산과 방수 신발도 챙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