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산림연구원, 필름 스물아홉 컷

쇼핑몰에서

경주로 가는 길에 쇼핑몰에 들렀다. 필름 한 롤을 넣고 아들을 따라다녔다. 실내 조명이 어두워 첫 컷부터 흔들렸다.

쇼핑몰 실내에서 손을 잡고 웃는 아들

실내에서 흔들리는건 피할 수 없다.

광장 가운데는 사람으로 붐볐다. 아들은 목도리를 두르고 사람들 사이를 걸었다. 뒤로 유모차와 계단에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바닥 타일 위로 햇빛이 넓게 퍼졌다.

사람이 많은 쇼핑몰 광장에 선 아들

세로로 한 장 더 찍었다. 바지 밑단이 운동화 위로 접혀 있었다. 목도리 끝이 한쪽 어깨로 넘어가 있었다.

세로로 담은 쇼핑몰 광장 위의 아들

가게 앞에서는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오갔다. 아들은 그 사이에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옷걸이에 걸린 외투들이 가게 입구를 가득 채웠다.

가게 앞에서 쇼핑백을 든 사람들 사이에 선 아들

해가 지고 조명이 켜진 뒤에도 셔터를 눌렀다. 걸어오는 아들의 얼굴이 번졌다.

목도리를 두르고 걸어오며 웃는 아들

밤에도 흔들림

상점 진열창 앞에서 한 장을 찍었다. SALE 간판 불빛이 뒤로 번졌다. 아들의 얼굴보다 진열창이 더 또렷하게 찍혔다.

SALE 간판이 걸린 상점 앞의 아들

포커스도 나감

벽돌 기둥이 늘어선 통로에서는 혼자 앞서 걸었다. 새로 산 신발이 바닥을 가볍게 딛었다.

벽돌 기둥이 늘어선 쇼핑몰 통로를 걷는 아들

신발이 자꾸 벗겨져 바로 샀다. 인터넷보다 2배 가격에…

통로 끝까지 가서야 뒤를 돌아봤다. 바닥에 그려진 물결 무늬를 따라 걸었다. 벽에 붙은 간판 조명이 하나둘 켜지고 있었다.

벽돌 기둥이 늘어선 쇼핑몰 통로를 걷는 아들

가까이 다가가면 초점이 뒤로 밀렸다. 벽에 기대 선 아들의 얼굴은 흐리고 벽돌만 선명했다.

가까이서 흔들리게 찍힌 아들

얼굴을 가까이 담으니 목도리 체크무늬만 또렷했다. 초점은 늘 얼굴보다 한 뼘 뒤에 맺혔다. 뒤쪽 진열대의 보라색이 넓게 번졌다.

손을 잡고 올려다보는 아들

세로로 담은 컷에서는 한쪽 발을 들고 막 걸음을 떼고 있었다.

세로로 담은 걸음을 떼는 아들

경주 산림연구원

다음 날 경주 산림연구원 숲으로 갔다. 털모자를 씌웠다. 아들은 나무보다 길가의 안내판부터 찾았다.

털모자를 쓰고 숲 속 안내판을 만지는 아들

경주 산림연구원 나무보단 저 안내 판넬에 관심이 있다

안내판 앞에 쪼그려 앉아 판넬을 손으로 쓸었다. 몇 걸음 가다 다음 안내판에서 또 멈췄다. 털모자 끝이 앞으로 기울었다.

숲길 안내판 앞에 쪼그려 앉은 아들

안내판 모서리를 두 손으로 쥐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판넬에 적힌 글자를 읽는 시늉을 했다. 뒤로 흙길이 숲 안쪽으로 굽어 들어갔다.

숲길 안내판 앞에 쪼그려 앉은 아들

키 큰 나무가 줄지어 선 숲에 들어섰다. 바닥에는 마른 잎이 덮여 있었다. 줄기가 붉은 나무들이 곧게 뻗었다.

키 큰 나무 사이를 걷는 아들

나무 사이를 걷다가 발밑을 내려다봤다. 마른 가지를 밟을 때마다 걸음이 멈췄다. 누비 점퍼 소매가 손등을 반쯤 덮었다.

키 큰 나무 사이를 걷는 아들

굵은 나무줄기 앞에 서면 손을 대고 한참을 버텼다.

큰 나무줄기를 손으로 짚은 아들

손을 못땜

한참 뒤에도 같은 나무 앞에 서 있었다. 뒤로 풀밭에 앉아 쉬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들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큰 나무줄기를 손으로 짚은 아들

숲에서 숲을 안보고 안내판에 집착중

나무 기둥 옆에 서서 껍질을 손끝으로 꼬집었다. 뒤로 산책하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한 번 꼬집고 나서 카메라 쪽을 돌아봤다. 다시 나무로 손을 뻗었다.

나무 기둥 옆에 서서 줄기를 꼬집는 아들

한 손은 나무에, 한 손은 허공에 두고 섰다. 나무껍질 결이 세로로 깊게 패어 있었다. 손가락이 그 틈으로 파고들었다.

나무 기둥 옆에 서서 줄기를 꼬집는 아들

안내판이 선 숲 바닥 위를 걸었다. 이번에는 안내판을 지나쳐 나무 쪽으로 갔다.

안내판이 선 숲 바닥 위를 걷는 아들

나무 꼬집는중

굵은 나무 사이 숲 바닥을 이리저리 걸었다. 나무 밑동이 아들 키보다 훨씬 넓었다. 걸음마다 마른 잎이 부서졌다.

굵은 나무 사이 숲 바닥을 걷는 아들

나무 사이에서 멈춰 서서 카메라를 봤다. 뒤로 가느다란 나무들이 빽빽하게 줄지어 있었다.

굵은 나무 사이 숲 바닥을 걷는 아들

밑동 옆을 지나며 팔을 흔들었다. 나무 그늘과 햇빛이 바닥에서 번갈아 지나갔다.

굵은 나무 사이 숲 바닥을 걷는 아들

곧게 뻗은 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길게 이어졌다. 멀리 사람 몇이 점처럼 보였다. 나무 끝은 화면 밖까지 올라갔다.

곧게 뻗은 나무 사이 산책로

숲길 끝에서

숲길 끝에서 아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달릴수록 웃음이 커졌다.

숲길을 달려오며 웃는 아들

두 팔을 벌리고 뛰어왔다. 뒤에서는 산책하던 사람들이 이쪽을 보고 서 있었다.

숲길을 달려오며 웃는 아들

바로 앞까지 와서 크게 웃었다. 앞니가 드러났다. 필름 속에서 가장 초점이 잘 맞은 컷이었다.

가까이서 담은 웃는 아들

마지막은 손을 잡고 숲길을 걸어가는 뒷모습이었다.

손을 잡고 숲길을 걸어가는 뒷모습

끝~

그때와 지금

실내와 밤에 찍은 컷은 대부분 흔들렸다. 필름 감도를 생각하지 않고 셔터를 누른 탓이었다. 숲에서 찍은 낮 사진은 초점과 색이 안정적이었다. 다음에는 실내용 필름을 따로 챙기겠다.

숲에서 숲 대신 안내판만 본 날이었지만 다시 가 볼 만한 숲이다. 다음에는 아들이 나무를 올려다보는 컷을 한 장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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