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밍엄 출장, 나흘간의 풍경
5월, 인천을 떠나 영국 버밍엄으로 향했다. 경유지 암스테르담을 거쳐 도착까지 꼬박 하루가 걸리는 여정이었다. 출장 일정 틈틈이 카메라를 들고 나흘의 장면을 기록해 두었다.
이동, 스키폴을 지나며


스키폴 공항 터미널은 천장 조명이 열을 맞춰 길게 이어졌다. 이른 시간이라 사람은 드문드문했고, 기둥 사이로 발걸음 소리만 크게 울렸다. 기둥 한쪽에 걸린 원형 조형물 안에서는 사람 실루엣이 시침 자리에 서서 시간을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했다.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올려다봤다.


터미널을 나오니 햇빛이 정면으로 쏟아졌다. 넓은 광장 한쪽에 캐리어를 세워두고 줄 선 사람들이 보였다. 다음 이동 전까지 잠시 앉아 쉬기로 했다.

공항 안 카페 자리에 앉아 잠깐 숨을 돌렸다. 창밖으로 붉은 조명 간판이 흐릿하게 번져 보였다.

캐리어를 끌고 다시 걸었다. 광장 저편 노점 앞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하늘은 맑았다.
도착한 저녁, 조용한 캠퍼스 거리

숙소 근처 잔디밭에 거위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데이지꽃이 점점이 흩어진 풀밭 위에서 미동도 않고 자리를 지켰다.

대학 캠퍼스처럼 보이는 조용한 도로가 원형으로 휘어져 있었다. 가로수가 늘어선 로터리 너머로 낮은 건물들이 이어졌다.

붉은 벽돌 건물 앞으로 사람들이 저녁 산책을 나온 듯 걸어가고 있었다. 하루의 이동이 끝나고 나서야 걸음이 느려졌다.
코벤트리, 폐허가 된 대성당
이튿날 저녁, 출장 일정 틈을 내 인근 코벤트리(Coventry)로 향했다. 오래된 건축물과 전쟁의 흔적이 함께 남은 도시였다.


코벤트리 카운슬 하우스가 흐린 하늘 아래 서 있었다. 첨탑과 깃대가 나란히 솟아 있었고, 붉은 사암 벽돌이 무거운 분위기를 냈다.

탑 꼭대기에 유니언잭이 걸려 있었다. 시계탑 아래로 방패 문장이 새겨진 것도 보였다.

건물 앞 광장에서는 스케이트보더 두 명이 계단 난간을 오갔다. 유적지라고 해서 엄숙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코벤트리 대성당의 첨탑이 눈에 들어왔다. 2차 대전 폭격으로 지붕과 창은 사라졌지만 첨탑만은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옛 성당 옆으로 좁은 아치형 통로가 이어졌다. 통로 끝, 조명이 켜진 황금빛 아치창이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났다.


첨탑 돌조각을 가까이서 올려다봤다. 반대편에는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져 성당 담벼락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담을 따라가니 어두운 아치문이 나왔다. 안쪽은 인기척 없이 캄캄했다.

잔디밭 한가운데 납작한 전쟁 기념비가 놓여 있었다. 이름 대신 짧은 문구만 새겨져 있었다.


좁은 골목은 가로등 하나 없이 어두웠다. 골목 끝에서 올려다본 첨탑은 구름을 배경으로 검은 실루엣만 남겼다.

하늘이 점점 짙어지며 구름이 첨탑 위로 무겁게 깔렸다. 노을과 먹구름이 뒤섞인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셔터를 눌렀다.


골목을 벗어나니 “Slug & Lettuce” 간판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근처 돌담에는 “Cuckoo Lane”이라 적힌 오래된 표지판이 박혀 있었다.

좁은 도로 양옆으로 오래된 건물이 늘어섰고, 그 사이에 차 몇 대가 세워져 있었다. 가로수 그늘이 도로를 반쯤 덮었다.

광장으로 나오자 알록달록한 건물과 노점이 눈에 띄었다. 낡은 건물들 사이에서 유독 그 색이 도드라졌다.


해가 완전히 저물자 신구 건물이 뒤섞인 스카이라인이 드러났다. 오래된 건물 정면에는 조각상 몇 개가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성당 스테인드글라스가 바깥 조명을 받아 색색으로 빛났다. 나뭇가지 사이로 올려다본 창은 낮인데도 화려했다.

해 질 무렵, 첨탑과 새로 지어진 유리 건물이 나란히 서 있었다. 오래된 것과 새것이 한 프레임에 담겼다.
버밍엄 시내, 낮의 기록
사흘째, 버밍엄 시내로 나왔다. 전날과 달리 하늘이 맑고 햇빛이 강했다.


빅토리아 광장 앞으로 오래된 석조 건물이 늘어서 있었다. 기둥과 조각이 촘촘히 새겨진 정면이 햇빛을 받아 또렷했다.


넓은 광장에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오갔다. 건물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바닥에 선을 그었다.

광장 한쪽에서 거리 음악가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발밑에 놓인 악기 케이스가 열려 있었다.


근처 박물관에 잠시 들렀다. 오래된 오토바이 한 대가 전시되어 있었고, 위를 올려다보니 돔 천장에 둥근 창 네 개가 나란히 뚫려 있었다.

붉은 커튼을 배경으로 유물 몇 점이 유리 진열장 안에 놓여 있었다. 조명이 은은하게 금속 표면을 비췄다.


위층 라운지는 높은 천장과 발코니를 갖춘 넓은 홀이었다. 초상화 액자가 벽을 채웠고, 아래층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전시실 발코니에서 한 사람이 그림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었다. 걸음을 멈추고 그 뒷모습을 담았다.


청동 조각상 몇 점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오래된 인물상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인상 깊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정면 삼각 지붕에 새겨진 조각이 파란 하늘과 대비를 이뤘다.


광장 중앙에는 동상이 서 있었고, 뒤로는 오래된 석조 건물과 유리로 된 신축 건물이 함께 보였다. 옛 도시와 새 도시가 한 시야 안에 겹쳤다.

배달 밴이 서 있는 길가 벤치에 누군가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도심 한복판에서도 낮과 밤의 풍경은 여러 겹이었다.

건물 모서리에 새겨진 문장(紋章) 조각을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세월에 닳은 돌의 질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붉은 벽돌 건물이 늘어선 좁은 도로가 저 멀리까지 이어졌다.


웨스트 미들랜즈 트램이 도로 한가운데 선로를 따라 들어왔다. 파란색과 흰색이 섞인 차체가 오래된 건물 사이를 가르며 지나갔다.

트램이 지나간 자리, 붉은 벽돌 건물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철길 다리 아래로 사람들이 종종걸음으로 지나갔다.
애스턴 빌라 구장 앞에서

일정 마지막, 축구 구장 앞을 지났다. 흰 지붕이 뾰족하게 각진 스탠드가 파란 하늘 아래 우뚝했다.
나흘 동안 스키폴에서 코벤트리, 버밍엄, 구장 앞까지 걸었다. 짧은 출장이었지만 카메라에는 꽤 많은 장면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