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골목에서 출발
공기가 맑은 날, 털모자와 목도리를 챙겨 아들과 집 앞을 나섰다. 카메라는 D810이었다. 골목 입구에서 아들이 먼저 멈춰 섰다.

아들은 산책을 좋아한다.
단지 공기가 안좋아서 못나갈 뿐
신나하는 표정을 봐라

빨리 가고 싶은데 사진찍는다고 밍기적 거리니 저러고 애가 탄다
가까이 다가가자 목도리 위로 볼이 빨갛게 올라와 있었다. 배경의 차들은 흐릿하게 뭉개졌다.

D렌즈탓인지 D810탓인지 모르겠지만 D4를 쓸때보다 포커스가 안맞는 경우가 너무 많다.
골목 모퉁이에 주황색 라바콘이 하나 서 있었다. 아들은 그 주변을 몇 바퀴나 돌았다. 라바콘을 손으로 가리키고 다시 뛰었다.








여기서도 포커스 나감
차 바퀴 옆을 지날 때마다 걸음이 느려졌다. 벽돌 담장이 이어진 골목에서는 뒤를 돌아보며 웃었다. 주차된 흰 차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골목 끝 쪽으로 걸어가다가 흰 차 앞에서 돌아섰다. 두 팔을 벌리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걸음마다 목도리 끝이 흔들렸다.




필로티 주차장에 멈춘 발걸음
산책 코스는 결국 필로티 주차장으로 이어졌다. 기둥마다 노란 줄무늬가 칠해져 있었다. 아들은 은색 차 번호판 앞에 바짝 붙어 섰다.




노란 번호판 바로 옆까지 다가갔다. 키가 차 보닛 높이와 비슷했다.



카메라를 세로로 돌려 찍었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외투 길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트럭 바퀴도, 흰 차 바퀴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몸을 숙여 휠을 한참 들여다봤다.


주차장 안쪽으로 혼자 걸어 들어갔다. 햇빛은 기둥 너머 담장까지만 들었다. 끝까지 갔다가 다시 이쪽으로 걸어 나왔다.







나올 때는 팔을 벌려 균형을 잡았다. 긴 외투 자락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와 걸음이 짧았다.





차와 차 사이 좁은 주차칸도 길이 되었다. 흰 차 두 대 사이를 몇 번이나 오갔다.

흰 차 두 대 사이를 지나 다시 카메라 쪽으로 걸어왔다. 바닥의 흰 주차선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공기 좋고 날씨 좋고 햇빛 좋고 그런데 주차장에 집착함
햇빛 쪽으로
주차장을 겨우 빠져나와 햇빛 쪽으로 걸었다. 화단의 인조잔디가 발밑에서 빛났다.


건물 입구 계단 앞에서 잠시 멈췄다. 햇빛이 계단 모서리를 하얗게 비췄다. 그림자가 발 앞으로 짧게 떨어졌다.



눈부심
파란 미끄럼틀
놀이터에 도착하자 파란 놀이기구 위로 먼저 올라갔다. 난간을 잡고 한 칸씩 옮겨 걸었다. 입구에 앉아 한참 아래를 내려다봤다.





미끄럼틀 입구의 둥근 구멍 안에서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손으로 바닥을 짚고 아래를 살폈다.



뒤에서 등을 받쳐 주자 파란 미끄럼틀을 내려왔다. 처음 두 번은 웃으며 내려왔다. 마지막은 속도가 붙어 몸이 앞으로 쏠렸다.





미끄럼틀 타다가 마지막엔 놀램
작은 미끄럼틀로

그래서 작은 미끄럼틀로 이동했는데 쫄아서 앞으로 탈려고 자세를 잡음
갈색 미끄럼틀은 길이가 짧았다. 입구에 엎드려 손을 먼저 짚었다. 내려온 뒤에는 미끄럼틀 양쪽을 붙잡고 앉았다.



두 번째부터는 앞으로 미끄러져 내려왔다. 끝에 닿으면 바로 다시 계단 쪽으로 향했다.



마른 잔디밭 달리기
놀이터 옆 잔디밭은 누렇게 말라 있었다. 해가 낮아 그림자가 몸보다 길게 늘어졌다. 아들은 그 그림자를 끌고 잔디밭을 가로질렀다.







잠시 손을 잡고 걷다가 금방 손을 놓았다. 마른 잔디 위로 발을 크게 내디뎠다.



항상 달릴때는 예전에 어떤 에니메이션의 야크 이러면서 달리는 캐릭터가 있는데
그 자세랑 같은 자세로 달린다.
넓은 잔디밭에서는 멈추지 않았다. 멀리 뛰어갔다가 다시 카메라 쪽으로 걸어왔다. 햇빛이 정면으로 들자 목도리에 턱을 묻었다.



눈을 찡그리면서도 카메라 앞을 떠나지 않았다. 목도리 매듭이 턱 밑까지 올라왔다.



흰 벽 앞에서
돌아오는 길, 흰 벽 앞 턱 위에 세웠다. 손을 잡고 몇 장을 찍었다. 아들의 시선은 계속 길 쪽을 향했다.


벽 위쪽 창에는 마른 나뭇가지가 비쳤다. 턱 한쪽에는 가방이 놓여 있었다.



가고 싶은데 자꾸 이쁜 벽에서 사진 찍을려고 서있으니 몸이 안달남
그때와 지금
92장 가운데 초점이 정확히 맞은 컷은 많지 않았다. 움직이는 아이를 따라가기에는 초점이 자주 뒤로 밀렸다. 다음에 같은 길을 걷는다면 조리개를 조금 더 조이고 나설 것이다.
주차장에서 보낸 시간이 놀이터보다 길었다. 짧은 동네 산책이었지만 다시 나설 만한 코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