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가을 경주, 필름으로 (안압지·문무대왕릉)
안압지의 저녁
2018년 가을, 필름 한 롤을 넣고 경주에 갔다. 해 질 무렵 안압지 전각 앞에 털모자 쓴 아들을 세웠다. 뒤로 파란 난간과 전각 지붕이 보였다. 아들은 목도리에 턱을 묻고 카메라를 빤히 봤다.

2018년 가을 경주 여행가서 찍은사진
조명이 켜지자 셔터 속도가 느려졌다. 달려오는 아들이 번져서 찍혔다. 뒤쪽 가로등 불빛이 동그랗게 부풀었다. 두 팔이 양옆으로 흐릿하게 퍼졌다.

야간 사진은 역시나 흔들린다.
어두워진 뒤 연못 앞에 섰다. 전각과 석축이 물 위에 거꾸로 비쳤다. 앞쪽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사람들 머리 사이로 겨우 자리를 잡았다.

안압지의 야경 사람들이 바글바글해서 원하는 구도를 잡아도 유지하기 힘들다.
자리를 옮겨 한 장을 더 찍었다. 하늘에 남은 푸른빛이 연못에도 비쳤다. 석축의 노란 조명이 물 위에서 두 줄로 겹쳤다.

문무대왕릉 앞 바다
이어서 바다로 갔다. 챙 넓은 모자를 씌웠다. 자갈 해변 위에서 눈을 찡그렸다. 모자에는 둥근 무늬가 찍혀 있었다. 뒤로 흰 파도가 길게 부서졌다.

주간 사진은 필름의 거친 질감이 많이 들어난다.
바다를 등지고 안겨서 먼 곳을 봤다. 바다 한가운데 바위섬이 떠 있었다. 하늘에는 얇은 구름이 비스듬히 퍼졌다. 바람에 모자 챙이 뒤로 젖혀졌다.

파도가 밀려오는 자리에 아내와 쪼그려 앉았다. 파도 소리에 둘 다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해변은 모래 대신 둥근 자갈로 덮여 있었다.

문무대왕릉 앞에서
아내가 아들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아들은 모자 챙을 잡고 파도를 봤다. 멀리 바위섬 몇 개가 수평선 위에 낮게 떠 있었다.

도리마을 숲
마지막은 도리마을 숲이었다. 곧게 뻗은 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었다. 아들은 들어서자마자 막대기부터 주웠다. 숲 안쪽에서 다른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바닥에는 풀이 듬성듬성 올라와 있었다.

경주 도리마을
막대기를 들고 숲 한가운데 섰다. 뒤쪽 나무 사이로 작은 건물 벽이 보였다. 나무들이 같은 간격으로 줄지어 있었다. 막대기 끝이 땅에 닿을 만큼 길었다.

사진보고 와보면 작은 규모에 놀라고 사진찍는 사람수에 놀란다.
막대기를 두 손으로 쥐고 옆으로 휘둘렀다.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몸이 같이 돌아갔다.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막대기가 마음에 듬
막대기를 어깨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입을 꾹 다물고 앞을 노려봤다. 외투 소매가 손목 아래로 흘러내렸다. 막대기 끝이 화면 밖으로 나갔다.

숲 바닥에 몸을 숙이고 무언가를 찾았다. 막대기가 발 옆에 끌렸다. 나무 그림자가 바닥에 줄무늬를 만들었다.

나무 사이에서 막대기를 세워 들었다. 털모자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목도리 끝이 외투 밖으로 삐져나왔다.

나무 사이를 오가며 막대기로 바닥을 짚었다. 운동화 끝에 흙이 묻었다. 멈춰 서서 막대기 끝을 들여다봤다.

막대기를 옆으로 길게 뻗었다. 양쪽 나무에 닿을 듯했다. 균형을 잡느라 한쪽 다리를 들었다.

한 발 물러나 숲 전체를 담았다. 키 큰 나무 사이에 아들이 작게 섰다. 막대기를 지휘봉처럼 들어 올렸다. 나무 기둥 하나가 화면 왼쪽을 가렸다.

윙가르디움 레비오우사
카메라를 세로로 세웠다. 쪼그려 앉아 흙을 막대기로 긁었다. 나무 기둥이 화면 위까지 올라갔다.

세로로 한 장을 더 찍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흙을 파는 데 집중했다. 털모자 꼭대기만 동그랗게 보였다. 옆에는 부러진 가지가 쌓였다.

모자를 벗기자 이마 위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막대기는 끝까지 놓지 않았다. 두 손으로 막대기를 가슴 앞에 가로로 쥐었다.

막대기를 한 손에 쥐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뒤로 나무 사이 틈이 밝게 빛났다. 바지 무릎에 흙이 묻어 있었다.

숲을 나올 때는 막대기를 지팡이처럼 짚었다. 바닥에는 마른 가지와 풀이 흩어져 있었다.

심마니 같음 최소 자연인
그때와 지금
밤 사진은 흔들렸고 낮 사진은 필름 입자가 거칠게 드러났다. 그래도 색은 필름에서만 나오는 색이었다. 바다 사진의 푸른색과 숲 사진의 보라빛이 특히 그랬다. 다음에 도리마을에 간다면 사람이 적은 이른 아침에 가겠다.
안압지와 바다, 숲을 이어서 돈 가을 경주는 다시 걸을 만한 코스였다. 다음에는 삼각대를 챙겨 안압지 야경을 다시 찍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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